흡사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3시간 반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치러진 한국과 대만의 경기는 이를 지켜보던 한국 국민들이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을 느끼기에 충분했기 때문.
다행히 9:8로 간신히 승리하며 5승째를 획득, 최소한 2위를 확보하며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이번 승리는 그야말로 상처뿐인 승리였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1회에 타자 일순하면서 대거 7득점, 2회에까지 추가점을 뽑은 한국이 8:0으로 앞서나갈 때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7회 콜드승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침체된 방망이는 완벽하게 되살아난 듯 보였고, 봉중근이 완봉 내지 완투승을 거둬준다면 ‘방망이의 부활’과 ‘투수진의 휴식’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 듯 했다. 일석이조, 꿩 먹고 알 먹고, 그야말로 금메달을 향한 최상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듯 보였던 것.
하지만 이게 웬걸? 미국전에서도 갑작스런 난조로 점수를 허용하던 봉중근(4.1이닝 6실점)이 대만 타자들에게 난타당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뒤이어 등판한 한기주(2.1이닝 2실점)는 이번 올림픽에서의 부진을 씻어내지 못하고 결국 동점까지 허용. 단숨에 ‘역전패’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뻔 했다. 4승을 거두고 있는 마당에 한 번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투수진이 대거 투입되었다는 것 자체가 남들이 쉴 때 중국과의 비로 연기된 시합을 치른 한국으로서는 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7회 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강민호가 결승점이 되는 안타를 때려냈을 때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지만, 이어지는 무사 1,3루의 대량 득점 찬스에서 허무하게 무득점으로 물러나는 모습은 또 한 번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날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기록하고 있던, 그것도 그 중 하나가 홈런이었던 고영민이 번트를 대고 그것이 파울 플라이로 아웃되는 모습은 이 공포스러운 경기의 하이라이트라 하겠다.
다행히 한기주의 뒤를 이어 등판한 권혁(0.2이닝)과 윤석민(1.2이닝)이 남은 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내면서 승리를 따냈기에 망정이지, 그 둘 중 한명이 무너지면서 패배하기라도 했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악몽이 될 뻔했다.
▷ 상처뿐인 영광
우리나라 대표팀은 이날 경기를 통해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첫째, 미국과 대만에 이어 23일 벌어지는 결승전(또는 동메달 결정전)에서의 선발 등판이 예정되어 있던 봉중근이 두 경기 연속 5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점이다. 두 경기 합계 8.2이닝 14안타 9실점. 지금 봉중근이 보여주는 컨디션으로는 쿠바-일본-미국 중 한 팀이 될 23일 경기에서 믿고 선발로 등판시킬 수 없다. 한국은 좋던 싫던 22일의 준결승과 23일의 결승전(또는 동메달 결정전)은 김광현과 류현진이라는 카드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상대가 이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게 불리하다.
둘째, 불펜의 소모가 극심했다. 휴식일 없이 경기를 치르고 있는 한국은 불펜의 소모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오승환의 컨디션은 아직 완전하지 않고 한기주는 더 이상의 기용이 가능할지가 의문인 상태. 문제는 남은 쿠바전과 네덜란드전이다. 쿠바전에는 송승준이 등판하면 된다. 하지만 류현진을 준결승 이후까지 남겨두기 위해서는 20일 네덜란드전에는 17일 중국전에서 4.1이닝을 던진 장원삼이 이틀만 쉬고 다시 출격할 수밖에 없다.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사실. 윤석민이 롱릴리프로 등판해 긴 이닝을 소화해줘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큰데, 지금의 피로는 큰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 특히 쿠바전에서 송승준이 적어도 7회 이상을 책임져주지 못한다면 총체적인 투수운용의 난국이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타자들의 타격 리듬이 흐트러졌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1회에는 놀라운 타격감을 선보였던 타자들은 2회 이후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경기 초반에 큰 타구가 나오기 시작하자 이후의 타석에서는 집중력과 정교한 맛이 사라져 버렸고, 주루플레이에서의 미숙함과 수비에서의 잔실수가 거듭됐다. 2회의 이승엽이 무리한 홈 쇄도로 아웃되더니, 8회에는 고영민의 번트 실패까지. 이대호의 타격감이 절정에 달했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럽지만,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쿠바는 물론 4강 토너먼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 대표팀은 든든한 안방마님 진갑용을 다리 부상으로 잃었다. 대신 투입된 강민호가 결승타를 때려내긴 했지만, 두 명의 포수를 융통성 있게 기용하는 것과 한 명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그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힘들게 이기긴 했지만 미국과 일본전의 승리는 명승부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캐나다와 중국을 상대로 1:0의 힘겨운 승리를 거둔 것은 우리 타자들의 부진 탓도 있지만, 상대 투수의 호투를 인정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대만전과 같은 경기 양상은 곤란하다. 이런 유형의 경기는 팀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
▷ 높아진 기대치를 극복하라
5승 무패. 계속 되는 승리로 인해 야구 대표팀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는 자꾸 높아져 가고 있다. 당초 목표는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을 따는 것이었지만, 연습경기에서 쿠바에 1승 1패로 대등한 승부를 펼친데 이어 본선에서 이토록 연승 가도를 달리자 기대치가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부담이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당장 다음 런던 올림픽부터 야구는 정식 종목에서 제외가 된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는 절호의 찬스가 한국 대표팀에 찾아왔다. 그렇다면 프로인 대표 선수들의 자존심을 불살라서라도 그것을 쟁취하러 가야하지 않겠는가.
그 결과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든 국민들은 박수쳐 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엄격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분석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얻은 열매야말로 진정 값진 것이기 때문.
승리를 향한 한국 야구 대표팀의 열정이 23일 경기가 종료되는 그 순간까지 계속 이어지기를, 더불어 대만전의 상처도 내일(19일) 벌어질 쿠바와의 경기를 통해 모두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올림픽 예선 풀리그 결과 및 순위>
<결승 토너먼트 일정>
22일 오전 11:30 준결승(예선 1-4위)
22일 오후 07:00 준결승(예선 2-3위)
23일 오전 11:30 동메달 결정전
23일 오후 07:00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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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승과 결승(혹은 3-4위전)에서 류현진-김광현이 나올 확률이 높겠죠. 지금 손민한이 없다는게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손민한이 있었으면 한경기 확실히 맏겨줄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2008/08/18 19:04쿠바한테 맥없이만 안지면 차라리 2위로 가는게 나을 듯 합니다. 일본이 4위를 할 확률이 높을것 같은데 일본만큼은 4강전에서 피하고 싶네요. 괜히 일본한테 4강전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또 예선에서 이기고 정작 이겨야될때 지는 상황이 올수도 있으니까요.
손민한도 손민한이지만 박찬호가 있었으면 이런걱정 안해도 되는데 (지금 구위론 미국팀 마이너리거나 일본팀 선수들은 그냥 바르실듯...ㅋ 물론 불펜으로 뛰고있지만 선발이여도 큰 차이 안날듯해서) 뭐 메이저리거는 못나오게 되있지만요
박찬호만 있었더라면 정말로 진지하게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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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19:16좀 아쉽네요...
아니면 김병현이라도...
메이저리거는 못나오게 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리그와 구단에서 안내보내는 거죠
실제로 지금 올림픽에 출장한 선수 중에는 메이저리그 승격을 거부하고 나온 선수도 있거덩요..
그나저나... 김경문 감독이 송승준을 쿠바전이 아니라 네덜란드전에 등판시킬 계획이라고 하는군요
어찌보면 현명한 판단 같기도 합니다
쿠바전을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다만... 쿠바전에는 누굴 기용할 생각일까요?
설마 7회 콜드패??
설마,버리는 카드라고 한기주를 -_-;;;;
2008/08/18 20:51는 페이크고, 한기주 선수가 대만전에서라도 살아나야 했는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ㅠㅠ
류현진을 비롯한 투수들이 총출동해서 2이닝씩 던지게 할 건가 보네요...
2008/08/18 22:55류현진, 정대현, 오승환 그리고 장원삼 정도까지...
승패는 운에 맞긴다는 말이겠죠^^;
그렇지 않아도 저도 이 비슷한 내용 - 좀 강하게 쓸 경우에는 욕을 왕창 먹을 것도 같습니다 - 을 준비하고 있는데 ... 정말 걱정입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 ... 성적에 비해서 김경문호가 약점이 상당히 많은데 ... ... 드라마가 현실이 되었을 때에 - 야구공이 둥글기에 드라마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 참 흥미롭습니다. 어쨌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08/08/18 21:05좋은 글이라뇨... 쩝...
2008/08/18 22:53부끄럽습니다.
읽어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사실 글의 초점이 조금 어긋난 어색한 문장이 되고 말았다는...
첨에는 경기 내용을 보고 약간 흥분한 맘에 질타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언제부터 이렇게 기대치가 높아진걸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방향이 틀어지고 말았죠...
맘에 안들어서 걍 지워버릴까 하다가 아까워서 올려는 봤습니다
엉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기주 "올림픽경기 최고 시청률 내 손안에 있다" 파문
2008/08/18 22:16그래도... 저렇게 불을 지르는데도 불구하고 전경기를 승리했다는 것도 신기하긴 하네요^^;
2008/08/18 22:56그런 기대치를 부디 만족시켜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진갑용 대신 강민호가 안방마님으로 있다는 것이 또다른 변수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한기주는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요?
2008/08/18 22:26어쩔수 없죠...
2008/08/18 22:56팬들은 욕심쟁이니까요^^
저도 마찬가지구요...ㅋ
정말 이번 올림픽 저만 이렇게 느끼는건지 모르지만 출전국들의 야구 수준이 정말
2008/08/18 23:31높아졋어요 특히 중국,,,,,, 서스펜디드 라는 초유의 게임을 치러낸것도 창피한 일이지만
한국타자들이 중국 투수들한테 고전하는걸보니 입에서 XX가 나오더군요
반대로 중국야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게 무서워요
13억의 인구가 미친듯이 작정하고 야구하면 어떻게 될지 ....... 무섭네요
지금까지 치른 게임들 보면 우리가 실력으로 이긴경기가 없는거 같아요
이승엽도 중국전 끝나고 창피한 일이라고 말했는데 ..
김경문 조차 중국전은 질거라고 생각했다는게 .....
그러고도 이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라면 창피해서 얼굴못들텐데.
지금상태로는 4강전에서도 도저히 못볼거 같아요 가슴 떨려서
근데... 쿠바까지 이겼네요^^
2008/08/19 17:50이젠 실력 외의 다른 원인은 없어 보입니다...
굉장하네요...
이렇게까지 연승가도를 달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ㅋ
깔끔한 분석 잘 읽었습니다. ^^:;;
2008/08/19 09:12감사합니다~^^
2008/08/19 17:50이제 준결승 대비하면 선발진 체력안배시키면.. 예선에 누구쓰지..ㄷㄷ
2008/08/19 11:26한기주 한테는 미안하지만 한기주가 소설한편멋지게 콜드게임패로
다른 투수들에게 체력안배를시켜줘야 ..;;;;;;;
내일 경기에서 한기주를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2008/08/19 17:51김경문 감독이 장원삼과 한기주로 경기를 끝내겠다고 하는군요
둘 다 대회 마지막 등판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한기주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길...
ㅋㅋㅋ 아주스릴만점이었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2008/08/19 13:29한국은 모든 경기가 다 비슷한 양상이네요...ㅋ
2008/08/19 17:526연승... 짜릿합니다~^^
어쨌거나 쿠바까지 이겼습니다...만.. 깊게 들여다 볼것도 없이 드러난 투타의 문제들에 왠지 WBC때의 경우도 그렇고... 정작 준결이후의 게임이 걱정되네여.. 이러다 국제대회에서 징크스라도 생길것같은-_-;;; 암튼 카이져님 글은 항상 흥미있게 보고있습니다~
2008/08/20 00:43흥미롭게 봐주신다니 감사하네요^^
2008/08/20 09:40한국이 투타에서 문제를 드러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그 정도 문제 한 둘 없는 팀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네요
쿠바도 생각 이상으로 투수진이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고...
일본 타격은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하구요
준결승만 잘 치러낸다면 우승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열심히 응원해봐야죠^^